24/05/2026
나다운 생각을 장착하는 시간
얼마 전 한 임원을 코칭했습니다. 마케팅과 비즈니스 개발을 맡은 분이었습니다. 새롭게 부서를 맡았지만 아직 조직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고, 일부 영역에서는 임원이면서 팀장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코칭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바쁜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이 빽빽하고, 메일에 빠르게 답하고, 회의에서 회의로 이동하는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이 곧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급한 일은 소리를 냅니다. 메일은 알림으로 우리를 부르고, 회의는 캘린더를 차지하고, 상사와 다른 부서의 요청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처럼 다가옵니다.
반면 중요한 일은 조용합니다. 전략을 생각하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 팀의 방향을 다시 정렬하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뒤로 밀립니다. 하지만 미룬 중요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구성원은 의욕을 잃고, 팀의 방향은 흐릿해지고, 성과는 떨어지고, 결국 리더 자신이 지쳐갑니다.
많은 리더들이 말합니다. “너무 바빠서 사람을 키울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리더들을 만나며 자주 느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바빠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더 바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일은 당장은 시간이 드는 일처럼 보입니다. 대화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급한 업무 앞에서는 쉽게 밀립니다.
하지만 구성원의 역량이 성장하면 그 성장의 결과는 계속해서 리더에게 돌아옵니다. 반대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리더가 팀원의 일을 계속 대신하면, 팀원은 자라지 못하고 리더의 일은 줄지 않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메일에는 더 많이 참조되고, 회의에는 더 많이 초대되고, 결정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반응하다 보면, 정작 자신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생각은 시작도 못 한 채 하루가 끝납니다.
Lynda Cardwell은 중요한 일이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을 해내기 위해 ‘Slow Time’, 즉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느린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급한 일에 가려진 중요한 일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주로 새벽입니다. 아직 세상이 잠든 고요한 시간에 저는 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는 메모지를 꺼냅니다. 적어둔 고민의 주제를 한 장씩 넘기며 지금 가장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질문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생각을 따라가게 됩니다. 흐릿했던 고민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따로 떨어져 있던 생각들이 연결됩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느린 시간 없이 바쁘게 일만 할 때는 마음이 헝클어진 느낌이 듭니다. 몸은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이 뒤섞이고, 내 판단보다 외부 요청에 더 많이 반응합니다. 그럴 때 저는 다시 주간계획을 펼치고, 지금 붙잡아야 할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한 곳에 모으는 일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느린 시간의 가치를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팀장이 처음 되었을 때 저는 느린 시간을 게으름이나 사치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루 일정을 빼곡히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가는 만족감으로 살았습니다. 할 일을 많이 지우면 일을 잘한 것 같았습니다. 생각만 하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일을 지워낼수록 일은 더 쌓였습니다. 더 열심히 했는데 더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더 빨리 움직였는데 더 중요한 것은 멀어졌습니다. 전문: https://brunch.co.kr//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