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2025
다음은 첨부된 일본어 기사(『넉클즈 위인전 - 극진의 맹호가 말하는 우살의 진상』)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소를 쓰러뜨린 사내’의 진실
-극진공수의 창시자, 오야마 마스타쓰가 남긴 인간적인 유산
취재·집필: 닥터 사무라이
사진 제공: 소에노 요시지 / 닛칸스포츠 / 아프로
‘갓핸드’로 불리며 맨손으로 황소를 쓰러뜨리고 실전 가라테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최배달. 젊은 시절 그의 직계 제자였던 소에노 요시지(‘극진의 맹호’)가, 스승의 알려지지 않았던 강인함과 따뜻함, 그리고 인간적 약함을 지금 털어놓는다.
“이론보다 싸워라” — 혹독했던 합숙 수련
“처음 오야마 선생님을 봤을 때, 외모부터 풍기는 기운까지 리키도잔을 떠올렸어요. 당시 고등학교 1학년, 16세 때였죠.” 소에노는 회상한다.
1964년, 그는 ‘소를 죽인 오야마 7단’으로 불리던 공수도 명인 최배달의 도장을 두드렸다. 그때는 아직 ‘극진회관’이 아니라 ‘오야마도장’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실제로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싸워라!’라고 하시던 분이에요. 이론보다 실전이었죠. 주먹질도, 발차기도 절대 ‘스톱 동작’ 같은 건 없었어요. 언제나 실격각이었습니다.”
전설적 괴력 — 황소의 뿔을 부러뜨린 사나이
“말도 안 될 만큼 강하셨어요. 특히 주먹의 풍압이 장난이 아니었죠. 합숙 훈련 중 팔씨름을 하면 모두 졌어요. 힘이 차원이 달랐어요. 황소의 뿔을 실제로 꺾은 분이니까요.”
“10엔짜리 동전을 구부린다는 일화도 진짜예요. 제 눈앞에서 세 개를 접었어요. 선생님은 가라테뿐 아니라 유도, 검도, 아이키주짓수, 관절기, 프로레슬링 등 모든 무술을 연구했죠. 밤늦게까지 ‘으음…’ 하며 연구하셨습니다.”
벽돌 깨기와 맥주병 베기
그는 기존 ‘시험깨기(타메시와리)’를 새롭게 발전시켜 ‘2단 벽돌 깨기’ 같은 고난도 기술을 완성했다. 첫 시범 성공은 당시 세계에 충격을 줬다. 또한 ‘손날로 맥주병을 베는’ 맥주병 베기는 전 세계 언론을 열광시켰다.
그는 『What is Karate?』(1958)와 『This is Karate』(1965)를 출판해 세계로 공수도를 전파했다. “프랑스에서는 해적판까지 나왔어요. 대단한 일이었죠.”라고 소에노는 말한다.
‘공수 바보 일대’ - 카지와라 잇키와의 갈등
1970년 4월, 소에노는 오타구 체육관에서 태국 선수와의 데뷔전에서 패배했다.
“분명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나도 옛날에 복싱 경기에서 진 적 있다. 신경 쓰지 마라.’ 하시더군요. 그 말은 처음으로 들은 따뜻한 위로였어요.”
하지만 경기 상대가 바뀌면 태도가 바로 변했다. “‘너는 극진의 간판이다. 절대 질 수 없다!’라고 소리치셨죠. 그런 변화 무쌍함조차 ‘선생님다웠어요.’”
카지와라 잇키가 만화를 연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공수 바보 일대』가 히트하자, 명성과 돈이 엮이며 마찰이 생겼다.
“선생님은 질투가 많았어요. 아시하라 사범이나 내가 카지와라 선생님과 가까워지는 걸 싫어하셨죠.”
극진과의 결별, 그리고 사도관의 탄생
1980년 9월 11일, 아시하라 사범과 나는 영구 제명됐어요. 사정은 복잡했지만, 이미 나 자신이 ‘사도관’을 창설했으니 되돌아갈 수 없었죠.”
몇 년 후, 후락엔 사우나에서 우연히 오야마와 다시 마주쳤다.
“‘왜 날 제명했습니까!’라고 외쳤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었어요.”
하지만 소에노는 지금도 말한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 ‘진리를 극한까지 추구하라’는 것이었어요. 무도가는 의협심과 뿌리가 같다는 뜻으로 ‘무협동근’이라 하셨어요. 미야모토 무사시를 존경했고, 미츠미네 신사에서의 수련을 좋아하셨죠. 합숙 때 나에게 ‘너는 앞으로 기수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결국 내 깃발을 세우고 살아왔으니까요.”
최배달의 마지막 말
1994년 4월, 최배달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였다.
“극진대회의 아나운서였던 오오이시 신야 씨에게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곧장 이케부쿠로 본부 도장으로 갔어요. 아마 내가 가장 많이 울었을 겁니다.”
그 한 달 전, 최배달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카지와라 잇키 장남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병원에서 몰래 나왔어’라며 웃으셨죠. 한 달 후에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장례식은 미츠미네신사의 신주가 집전한 신도식이었고, 제자들은 눈물로 스승을 배웅했다.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밤이 되면 제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널 내 자식이라 생각한다.’
물론 절 기쁘게 하려는 말이었겠지만, 절반은 진심이었어요. 소년 같고, 순수하며 외로움을 많이 타셨죠. 그런 사람은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소에노는 오야마의 유골을 곁에 두고 있다.
“사모님께 받았어요. 제자 중에서 유골을가진 사람은 나뿐이죠. 그분은 신도 아니고, 전설도 아니었어요. 인간 최배달이었어요. 강함과 자비, 그리고 약함까지 모두 포함한 나의 평생 스승입니다.”
오야마 마스타쓰 연대표
| 연도 | 사건 |
|------|------|
| 1923 | 당시 일본령 조선 전라북도 김제 출생 |
| 1943 | 야마나시 항공기술학교 입학 |
| 1946 | 일본 전후 최초 전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 우승 |
| 1948 | 가라테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의하고 청정산 입산 수행 (18개월) |
| 1950 | 치바현 다테야마에서 황소와 대결, 다수 격파 |
| 1952 | 미국 시카고 초청, 32개 도시에서 시범 및 지도 |
| 1954 | 도쿄 메지로에 ‘오야마도장’ 개설 |
| 1964 | 이케부쿠로 극진회관 본부 완공, 국제공수도연맹 설립 |
| 1971 | 카지와라 잇키 원작 『공수 바보 일대』 연재 시작 |
| 1975 |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최 |
| 1994 | 4월 20일 폐암으로 별세 (향년 70세) |
소에노 요시지 약력
1947년생. 1964년 오야마도장 입문. 제1회 전일본대회 준우승.
해외 수련 후 1981년 ‘세계공수도연맹 / 일본격투술연맹 사도관’을 창설. 현재 전 세계 수십 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